코로나 때문에 못 가는 홍콩 여행이 가고 싶어 선택한 영화 '중경삼림'
개봉 1995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임청하, 금성무, 왕페이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힘든 요즘은 영화로 여행기분을 내거나 추억에 잠기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공심채 볶음을 먹다가 홍콩에 너무 가고 싶어서 영화라도 봐야겠다 싶어 선택한 '중경삼림'입니다. 예전에 봤을 때는 주인공과 영화 음악에만 집중했었는데 이번에 보면서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같은 영화라도 언제 보는지에 따라 느끼는 게 다른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스토리 중 첫 번째 이야기는 경찰 223과 마약 딜러인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30개의 통조림을 다 샀을 때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든 걸 잊기로 했다
경찰은 만우절 날 사귀게 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먹기 시작합니다. 경찰은 여자 친구와의 이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가려 하고 파인애플 통조림은 이 영화에서 경찰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물건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그의 독백은 사랑의 상처와 그의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5월 1일에 편의점에 있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두 사서 먹고 경찰은 술집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마약 딜러인 여자를 만납니다. 어딘가모르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여자에게 경찰은 끝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그녀의 취향을 알아내려 합니다. 사실 마약딜러인 여자도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을 죽이며 쫓기고 있는 신세였으며 그런 그녀와 경찰은 그날 밤 함께 하기로 합니다.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으로 적어야지...
경찰과 여자는 함께 하는 밤 여자는 침대에서 정말 쉬기만 했고 남자는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먹기만 합니다. 실연을 받아들이며 다 비워냈으니 다시 채워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처럼 남자는 먹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유한함에 대해 생각하며 그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는다면 만년으로 적겠다고 독백합니다.
서로 다른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는 경찰 633과 식당의 직원인 여자가 나옵니다. 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둘 다 경찰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찰도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하루하루 그녀를 기다리며 일상을 보냅니다. 여자는 그런 경찰을 짝사랑하며 그 남자의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그 남자의 흔적을 느끼며 몰래 그남자의 일상을 들여다봅니다. 경찰은 물에 젖은 양말이나 젖은 수건에게 말을 걸며 그만 슬퍼하라고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어느날 남자가 자신이 집에 몰래 다니는걸 알게 된 후 왠지 모르게 남자를 피합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자고 말하고 데이트 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그남자의 앞에 나타납니다.
어딜 가고 싶죠? 아무 데나 당신 좋은 데로
그녀의 새로운 직업은 남자와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의 직업과 같았고 그녀는 제복을 입고 그 남자 앞에 나타납니다. 어딘가 모르게 바뀐 그녀의 모습에 남자는 그녀가 남기고 간 휴지 위에 그려진 티켓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티켓도 받냐고 물어보고 여자는 어디로 가고 싶냐고 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는 어딘가 모르게 확신에 찬 모습입니다. 사랑의 유통기한에 슬퍼했던 경찰 223과 다르게 경찰 633은 자신이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들어 낸 듯합니다.
어쩌면 사랑의 유한함이 새로운 사랑에 대한 두려움도 될 수 있지만 유한하기에 서로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노력한다며 그 또한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