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15
감독 가와세 나오미
출연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 가와세 나오미
벚꽃이 다 저버렸네, 안녕 안녕 나도 반가웠어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만 76세의 도쿠에 할머니는 도라 하루 단팥빵 가게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령의 손마저 불편한 할머니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할 생각이 없던 주인 센타로는 애꿎은 시급을 핑계 삼아 할머니를 돌려보냅니다. 할머니는 '또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고 다음 날 자신이 만든 단팥 소를 갖고 다시 가게를 찾아옵니다. 센 타루는 할머니가 가져온 단팥소를 맛보고 단팥빵집 단골 여고생 와카나의 기회를 줘보라는 말에 생각을 바꿔 할머니에게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벚꽃이 만개했던 가게 앞에 푸른 잎이 돋은 벚나무를 보면서 할머니는 저버린 벚꽃들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마치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갑자기 끓이는건 실례잖아
새보다 일찍 일어난다는 할머니의 단팥소 만드는 새벽 작업이 시작되고 센타로는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게 됩니다. 팥으로 단팥소를 만드는 과정을 마치 생명을 다루는 일처럼 소중히 하는 할머니와 모든 것들이 낯설기만 한 센타로는 그저 맛있는 단팥소를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팥에 설탕이 스며드는 시간을 남녀의 사랑과 비교하며 갑자기 끓이는 건 실례라는 할머니의 말은 어쩌면 사랑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느긋하게 기다려야 맛있는 단팥소를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랑도 기다려 주고 지켜봐 줘야 하는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니까
할머니의 단팥소 덕분에 단팥빵 가게는 손님이 늘어났고 덕분에 웃을 일 없던 센타로도 조금씩 미소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단지 가게 매출이 올라서만은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가게 건물 사장에게 빚이 있던 센타로는 작은 단팥빵 가게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소모한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기에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밝은 감성과 긍정적인 마음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센터로 뿐만이 아니라 가게 단골인 여고생 와카나 역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따듯함을 할머니에게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은 할머니의 행복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한센병으로 격리시설에서 평생을 지낸 할머니를 해고하라는 가게 주인의 말과 함께 소문은 금세 퍼져 가게를 찾는 손님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 후 할머니는 더 이상 단팥빵집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밝고 천진난만했던 할머니는 평생을 격리 시설에서 살아야 했기에 자연의 자유로움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벚나무의 꽃과 잎사귀에게도 인사를 나누며 자연의 자유로움과 본인의 외로움을 조금씩 희석시키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할머니가 폐렴으로 돌아가시고 다시 벚꽃이 피었고 와카나는 교복을 입고 벚꽃길을 걸어가고 센타로는 노점에서 단팥빵을 팔고 있습니다. 할머니 대신 인사라도 하듯 벚꽃이 흩날립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각자가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할머니의 말은 특별해야만 인정받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존감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것 같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각자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위안을 주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어쩌면 화사한 봄보다는 잔잔하고 촉촉한 가을이 더 어울리는 영화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년에 이맘때 벚꽃이 필 때면 할머니를 만나려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 저도 오늘은 길거리의 나무들과 인사를 나눠봐야겠습니다. 안녕 안녕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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